2010년 새해 우리 축산업이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축산물 생산비 절감, 가축 전염병 청정화, 분뇨처리 등 산적한 과제 외에도 수입 축산물과 벌여야 할 경쟁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예산된다. 본지는 축산단체장과 축협 조합장, 소비자단체 관계자 등 전문가 15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올 한해 우리 축산업을 미리 진단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짙은 안갯속에 들어선 축산업=우선 2010년 우리 축산업이 처한 현실을 고사성어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을 해 봤다. 그 결과 무려 6명이 깊은 안갯속에 들어서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앞날을 알 길이 없다는 뜻의 ‘오리무중’(五里霧中)을 들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상태를 말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를 꼽은 사람은 5명, 나라 안팎으로 근심과 걱정이 가시지 않는 상황을 뜻하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은 1명이 제시했다. 반면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은 2명,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1명이 각각 답했다.
축종별로 살펴본 올해 ‘일기예보’에서는 전반적으로 ‘흐림’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한우의 경우 ‘맑음’이 우세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는 미국산 등 수입 쇠고기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특히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데다 지난해 유통단계에 전면 도입된 쇠고기 이력추적제 영향으로 위생·안전성과 품질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 한우고기의 소비는 올해도 꾸준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한우 사육마릿수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한우 가격이 올 초반에는 상승세를 유지하다 후반에는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양돈은 돼지 마릿수가 늘고 수입물량 증대 등으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가격 열세가 예상되는 등 ‘흐림’으로 표현한 사람이 많았다.
양계(육계·산란계)와 오리는 ‘맑음’과 ‘흐림’이 비슷하게 나타났으며 낙농은 응답자 대부분이 ‘흐림’ 또는 ‘비’를 꼽았다. 양록과 양봉 역시 올해 기상도는 ‘흐림’ 일색이었다.
◆“생산비절감·생산성향상·친환경이 갈 길”=전문가들은 잇단 축산 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시장개방 대책으로 고품질 축산물 생산을 비롯해 생산성 향상과 생산비 절감 및 자연순환형 축산 시스템 마련 등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경쟁력 강화의 첫번째 과제로 생산비 절감을 꼽고 이를 위해선 사료안정기금 설치를 통한 사료값 안정, 배합사료·조사료의 안정적인 공급체계 마련, 사료효율 증대, 철저한 위생관리, 적정 사육밀도 준수 및 폐사율 감축 등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나아가 이 같은 생산비 절감은 생산성 향상으로 연계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특히 조석진 영남대 교수는 “생산비 절감은 경영의 계수관리와 시장변화에 대한 대응 등 경영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경영자인 축산농가의 경영능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피할 수 없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간접자본(SOC) 차원에서 가축분뇨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따라서 가축분뇨의 퇴비화·에너지화, 간척지를 활용한 축산단지 조성, 지역차원의 경종과 축산 연계를 통한 자연순환형 축산 시스템 구축, 가축분뇨 자원화사업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고품질·안전축산물 생산하고, 유통 투명화 체계 마련”=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먼저 생산자들이 고품질·안전축산물 생산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강광파 소비자시민모임 상임이사는 “소비자들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한 축산물인지 그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며 “고품질 생산과 함께 최종 소비될 때까지 위생·안전성 제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정부도 원산지표시와 쇠고기 이력추적제에 대한 보다 철저한 시행과 단속 강화를 주문하는 한편 우수 친환경 축산물 생산을 위한 제도 정비와 정책 마련에 나서야 우리 축산업과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게다가 생산농가와 정부 모두 안전한 고품질 축산물 생산 노력과 함께 이를 적극 알리는 마케팅·홍보전략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에게는 신선하고 우수한 국내산 축산물을 변함없이 애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농가에게는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경쟁력과 품질향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소비자-생산자-유통업체가 참여하는 대화 채널을 구축, 소비자의 의견을 청취해야 FTA 등 시장개방의 파고를 이겨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컸다.
◆품목별 대표조직, 일관성과 원칙 갖춰야=정부가 지난해부터 역점을 둔 품목별 대표조직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협회 중심으로 정책 일원화와 집중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축산단체와 달리 학계·소비자단체·유통업체 등은 대규모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병수 롯데마트 축산팀장은 “나눠먹기식이 아닌 대규모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효율을 높여야 대표조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석진 영남대 교수도 정부의 재정지원을 겨냥한 임시조직이 되지 않도록 일관성과 원칙 있는 운영을 주문했다. 한편 낙농 관계자들은 대표조직 육성 이전에 낙농제도 개편이 선결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소비촉진 활동에 치우친 현행 축산자조금 운용방식의 개선도 주문했다. 축산물의 품질과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연구개발사업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그 재원을 자조금에서 충당하자는 의견을 많이 제시한 것. 이정우 한우개량사업조합장협의회장(해남축협 조합장)은 “한우 축사시설 현대화 연구와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해썹)체계 수립 등에 자조금 예산이 배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조금사업의 소비홍보 측면에서는 방송·신문 등을 통한 기존 매체 광고 외에도 소비자와 함께할 수 있는 체험형 활동을 늘리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동화책 발간 등을 통해 소비자의 머릿속에 우리 축산물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효율적으로 각인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자조금이 정착된 한우·양돈 등과 달리 걸음마 단계인 육계·산란계 등의 경우는 자조금의 필요성을 알리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김광동·박상규·류수연 기자 kimgd@nongmin.com